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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10/03/22 다시 시작
  2. 2010/03/22 전화번호부

다시 시작

Diary 2010/03/22 10:46

 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래왔다.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,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.

 때론 갈팡질팡하는 내 삶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렸으면 싶다. "백 미터 앞 급커브 구간입니다. 주의운행하세요."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위치를 내려다보며 도로 사정을 일러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처럼, 내가 가야 할 길이 좌회전인지 우회전인지 누군가 대신 정해서 딱딱 가르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?

[......]


 서른두 살, 가진 것도 없고, 이룬 것도 없다.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,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. 우울한 자유일까, 자유로운 우울일까. 나,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, 무엇이든?


-정이현 "달콤한 나의 도시" 중에서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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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amond.

전화번호부

Diary 2010/03/22 10:43
한 사람의 전화번호부는 그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. 나는 비참한 심정으로 목록을 넘기기 시작했다.

...중략...


 그래. 이만하면 오늘 같은 밤. 술친구로 괜찮을 듯싶었다.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. 문자메시지는 참 고마운 도구다. 전화 통화의 어색한 침묵과 말줄임표의 곤혹을 감당하기 실을 떄 더 없이 유용하다. 문자가 없던 시절에는 인간관계의 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까마득했다.

 친밀하지 않은 사이의 이성에게 문자를 보낼때는 일단 자연스럽고 쿨해 보이는 게 중요했다. 평소 오매불망 당신 생각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. 그러나 오늘 불현듯 당신이 떠올랐다는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. 그리고 자연스런 답장을 유도하기 위해 마지막 문장은 반드시 의문문으로 하는 것이 좋다.


   - 문득 생각나서 연락드려요. 얼굴 잊어버리겠어요. 심심한 저녁이네요. 뭐 하고 계세요? ^^


 이모티콘을 뺄까 하다가 그냥 넣어서 보냈다. 터덜터덜 걸어 다음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. 고요하기만 한 전화기를 나는 공연히 만지작거렸다. 삐빅.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울린 것과 버스가 도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. 미련 없이 버스를 포기하고서 나는 부리나케 휴대폰을 확인했다.


   - W백화점 고객사은대잔치. 15만원마다 상품권 증정. 보너스! 고객 열 분 추엄 무료 해외여행.


 액정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.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. 내 인생이란, 정말이지 딱 요 모양이다. 기다리는 전갈은 도착하지 않고 엉뚱한 유혹만 넘실댄다. ... 중략


- 정이현 "달콤한 나의 도시" 중에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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Posted by amond.